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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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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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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122)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로 132(문지동 472)

전시실 안내

전시실 입구
의림지 토층

중원문화를 찾는 첫걸음, 10년

충주를 중심으로 한 중원 지역은 예로부터 풍부한 철광산지와 내륙 및 한강을 이용한 교통로가 발달되어 이를 차지하고자 고대 삼국(백제‧고구려‧신라)이 경합하고 또 점유하면서 독특하고 복합적인 중원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전시실은 중원문화의 기반인 백제‧고구려‧신라의 문화상과 무덤을 통해 본 통일신라 및 제철문화를비롯해 5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한 강릉 굴산사지의 조사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중원문화

중원문화

중원문화의 형성 배경 및 발전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제작된 3D애니메이션 영상물(3분30초)로
디지털 첨단장비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마한/백제

마한

마한이 충주지역의 남한강변과 그 지류인 한포천변에 터전을 마련하고 크게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은 충주 금릉동유적과 노은면 문성리유적의 원삼국시대 대규모 움무덤군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백제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대에 재지세력인 마한을 복속시키고 중원지역을 점유한 뒤 제철산업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탄금대토성, 장미산성, 탑평리 백제 취락유적, 칠금동 제철유적 등을 통해 중원문화의 서막을 연 백제의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한/백제
마한/백제
마한/백제
고구려

고구려

고구려는 장수왕대에 평양 천도(427) 후 본격적인 남하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충주지역에 국원성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충주 고구려비는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기념비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외 고구려 목책치성이 확인된 장미산성, 탑평리유적의 고구려 온돌시설, 두정리고분군, 봉황리마애불상군 등에서 중원지역에 남긴 고구려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고구려
고구려
고구려

신라

신라는 6세기 중엽 진흥왕대에 한강유역을 차지하였으며, 지정학적 요충지였던 충주에는 국원소경(國原小京 557)을 설치하였습니다. 중앙탑이 위치한 남한강변의 탑평리 일대에서는 소경의 치소와 관련된 대규모 신라 취락이 확인되었고, 인근 누암리와 하구암리에는 700기가 넘는 신라의 지배층 무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중원 지배는 삼국통일 후 9주 5소경을 정비하면서 본격화되었는데, 개편된 중원(소)경은 일종의 부도(副都) 역할을 하며 지방통치의 거점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신라
신라
신라
제철

제철

충주는 옛날부터 ‘철’이 유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이곳은 한반도 3대 철광산지이자 백제로부터 근세까지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내는 대규모 생산단지가 발달했던 도시였습니다. 백제가 융성했던 4세기! 탄금대 남사면을 중심으로 고대 제철단지가 형성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대소원면 노계마을 일대에 『고려사(高麗史)』와 같은 기록에도 나오는 ‘다인철소(多仁鐵所)’가 소재해서 최근 이와 관련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조사 되었습니다. 명실상부 ‘고․중세의 포스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릉 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는 1936년 대홍수로 인해 유적지 일대에서 초석과 계단 등 유구 일부가 확인되면서부터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본격적으로 학술조사를 추진하여, 5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지 30기, 공간을 구분 짓는 담장지 16기, 보도, 계단, 배수로 등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습니다. 굴산사는 유적을 통해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문(闍崛山門)의 중심 도량으로서 번성했던 당시 지방 선종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릉 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
충주 봉황리마애불상군
보물

충주 봉황리마애불상군

봉황리 햇골산 중턱의 비탈진 바위면에 돋을새김기법으로 조성된 불ㆍ보살상군이다. 마애불상군은 하나의 큰 바위(높이 1.7m, 너비 약 5m)로 연결되어 있지만 중간에 깨어진 곳을 경계로 우측에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중심으로 한 5구의 보살상이 조성되어 있고, 좌측에는 여래좌상(如來坐像)과 공양상(供養像), 사자상(獅子像)이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씩씩한 기상을 지니고 강건한 느낌이 있는 이 마애불상군은 삼국시대 불상의 공통된 고식 양식과 함께 고구려 불상의 특징적 요소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충주 누암리고분군
사적

충주 누암리고분군

누암리고분군은 270여기의 고분이 7개 구역에 나뉘어 수십 기씩 군집을 이룬 채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는 봉분의 직경이 10m이상인 대형고분도 약 30여기에 달하며, 굴식돌방무덤이 대표적으로 신라의 전형적인 지방형 고분의 특성을 갖는다. 신라토기의 후기양식을 대표하는 짧은굽다리접시(短脚高杯)와 굽다리긴목항아리(附加口緣臺附長頸壺), 초기 단계의 도장무늬토기(印花紋土器), 그리고 매납된 금귀걸이나 은제 허리띠 등의 위세품으로 미루어 6~7세기를 중심연대로 하는 누암리고분군에서 당시 국원소경을 경영했던 신라계 지배층의 대규모 집단 무덤인 사실을 알 수 있다.

충주 완오리 고려 제철로

충주 완오리 고려 제철로

충주는 남한의 3대 철광산지이자, 한강의 수로, 하늘재 등의 육로 등 교통로가 발달되어 있으며, 산림이 풍부해 제철 관련 기반이 잘 갖추어진 곳이다. 이 때문에 원삼국시대로부터 철생산 조업이 이루어졌으며, 고려 때에는 「다인철소(多仁鐵所)」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에서도 2016년부터 충주 칠금동 백제 제철유적 발굴하고 있으며 좁은 면적에서 수십기의 제철로를 확인하여 조사중에 있다.

이렇듯 현재까지 충주를 중심으로 진천, 청주, 보은 등 중원지역에서 제철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으며,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야외전시장에는 충주 완오리에서 확인된 고려 제철로와 진천 송두리에서 확인된 삼국시대(백제) 정련단야로가 유적에서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특히 완오리 제철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송풍관이 꽂힌 채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