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문화권 유적조사연구

중요선사, 역사유적에 대한 기획 학술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사적지의 정비, 복원을 위한 조사 및 사적지 지정을 위한 사전조사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개발이나 도굴 등으로 훼손, 멸실될 우려가 있는 유적과 민원 발생의 소지가 있는 긴급한 사안의 중요 유적도 조사하고 있다.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咸安 阿羅加耶 推定 王宮址)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목록
유적명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시대 삼국시대
지정 비지정 조사기간 2018년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66번지 일대에 위치하며, 해발 약 25m~35m의 낮은 구릉지에 해당한다. 이 곳은 1587년에 편찬된 조선시대 읍지 『咸州誌』卷之一古跡條‘古國遺址白沙里扶尊亭之北有古國之墟周回一千六百六尺土築遺址至今宛然世傳伽耶國舊基云’을 근거로 傳안라왕궁지로 추정되었으며, 1656년 동국여지승람에서는 ‘古國墟’라 하였다.
1916년 일제강점기 고적조사보고에는 이 일대의 도면과 여러 장의 사진이 남아있으며, 초석이 확인된 작은 가야동을 ‘傳王宮址’로 추정하였다. 현재 토축 성벽과 주변 건물지 등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 중에 있으며, 아라가야 왕성의 실체를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높다. 토축은 정교하게 쌓아 올린 대규모 성벽으로 확인되었으며, 목탄층은 성벽 축조과정에서 조성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토성 내부에서는 목책열과 건물지, 방형의 수혈유구가 발견되었고, 유물은 고배, 기대, 연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1920년 조선고적도보
조사구역 전경

함안 우거리 토기생산유적(咸安 于巨里 土器生産遺蹟)

함안 우거리 토기생산유적 목록
유적명 함안 우거리 토기생산유적 시대 삼국시대
지정 비지정 조사기간 2018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연구과제 “가야 고분과 유물 연구”와 관련하여 2018년에 기획된 발굴조사로서, 가야 토기의 생산 및 유통 체계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조사의 일환으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사지역이 위치한 함안 법수면 우거리 일대는 가야 토기 산포지로 알려져 있으며, 가마 생산지가 밀집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 연구소는 2018년 초 우거리 일대의 토기생산유적 추정지에 대한 지표조사를 진행하여 조사지역을 선정하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였다. 조사 결과 길이 11m에 이르는 대형 토기 가마터와 폐기장이 함께 확인되었으며, 이에 대한 구조 및 내부 토층 퇴적 양상, 층위별 출토유물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가야 유적과 유물에 대한 조사연구는 주로 고분과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데 반해, 이번 토기 생산유적 발굴조사 결과는 아라가야의 토기 생산과 유통, 나아가 교역 경제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조사는 가야 고분과 유물 연구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적 전경(좌-가마, 우-폐기장 / 남동-북서)
가마 전경(남동-북서)

김해 봉황동유적(김해 봉황동유적)

김해 봉황동유적 목록
유적명 김해 봉황동유적 시대 삼국시대
지정 사적 제2호 조사기간 2015년 ~ 현재

김해 봉황동 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복합유적으로 대성동고분군과 수로왕릉의 남쪽, 봉황대 구릉 및 주변 일대에 분포한다. 이곳은 금관가야(42~532년)의 왕궁으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현재 김해 회현리 패총과 봉황대 유적을 포함하여 사적 제 2호로 지정되어 있다. 봉황대유적은 일제강점기인 1900년 초에 발굴 조사되어 ‘김해기’ 패총의 표지적인 유적으로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확인된 ‘김해식 토기’는 한국 고고학 편년연구의 지표가 되었으며,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판축상 5세기 대의 토성이 확인됨에 따라 이 지역을 금관가야 고도(古都)의 중심지로 추정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건물지와 소성유구, 수혈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3호 건물지는 먼저 만들어져 있던 5호 건물지를 부수고 만들어졌다. 건물지의 외곽으로는 벽기둥을 세웠고, 이를 모래를 섞은 점토를 둘러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은 점토를 깔아 다져 지면을 고르게 정지하였다. 내부에는 크고 작은 수혈(구덩이)들이 다수 확인되었으나 용도를 알 수 없다.
발굴조사에서는 시루와 항아리 같은 일상용토기와 굽다리접시 등과 같은 의례용 토기 및 송풍관 같은 생산 관련 유물도 확인되었다. 또한 소량의 장신구(굽은옥, 유리구슬)와 육,해상 동물의 유체가 다수 출토 되었다. 출토된 유물들의 시기는 4~5세기 대의 것으로 판단되며, 향후 추가 조사를 통해 더 많은 유물을 확보하여, 유적의 성격을 명확하게 밝힐 예정이다.

봉황동 유적 전경
1호 소성유구

창녕 교동고분군 (昌寧 校洞古墳群)

창녕 교동고분군 목록
유적명 창녕 교동고분군 시대 삼국시대
지정 사적 제514호 조사기간 2009년 ~ 현재

창녕 교동고분군은 계성고분군, 영산고분군과 함께 창녕지역 대표 고분군으로 송현동고분군과 함께 사적 제514호로 지정되어 있다. 2009년부터 2010년 실시한 주차장 정비구역 내 고분 발굴조사는 1918~19년 일제강점기(9기 조사) 및 1992년 동아대학교 발굴(5기 조사) 이후 18년만에 실시한 것으로, 창녕군이 ‘교동고분군 주차장 정비사업’ 진행 중에 고분이 있음을 확인, 유적 보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조사결과, 봉분 직경 19m에 이르는 중대형의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 1기와 조선시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관옥, 은제허리띠와 고리자루큰칼을 차고 있었으며, 부장칸에는 각종 토기류, 마구류 및 순장인골편 등이 출토되어 고대 매장의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은제허리띠와 장식은 완형이 세트로 출토되어 출토 예가 드문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조사한 교동 88호분은 개석 노출에 따른 고분의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해 실시되었다. 고분의 잔존 규모는 직경 17.6m(남북), 높이 약 3m이고, 봉토는 분할 구획 성토하였으며, 호석은 동쪽 절반만 남아 있다. 횡구식석실분으로 석실은 남북 길이 6.7m, 동서 너비 1.3m, 높이 2.0m이며, 바닥에는 2개의 시상석이 마련되어 있다. 도굴이 되었으며, 남단벽과 중앙부에서만 토기류 및 철기류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목마산 기슭에 교동고분군 내 미정비 지역인 39호분 및 주변고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함안 성산산성 (咸安 城山山城)

함안 성산산성 목록
유적명 함안 성산산성 시대 삼국시대
지정 사적 제67호 조사기간 1991년 ~ 2016년

함안 성산산성(城山山城)은 가야읍에서 남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조남산(鳥南山, 해발 139.4m) 정상부에 축조된 삼국시대의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1.4km 정도이다. 함안을 중심으로 한 고대 아라가야(阿羅伽耶)의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는 함안 말이산고분군(사적 제515호) 등 당시 수장급(首長級) 고총고분이 인접해 있어 아라가야의 정치 군사적 주요거점으로 추정되어 왔다. 이에 산성의 구조와 성격을 밝히기 위하여 1991년부터 현재(2015년)까지 총 17차에 걸쳐 학술발굴을 연차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신라의 축성기법과 관련 있는 단면 삼각형의 외벽보강구조물(外壁補强構造物)을 갖춘 협축식석성(夾築式石城)으로 밝혀졌다. 조사 결과, 남문지(南門址)와 동문지(東門址)의 위치 및 형태를 확인하였고, 수구 및 외벽보강구조물, 내벽(內壁)의 축조분기점 등 체성구조(體城構造)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성 내 저수지(貯水池) 발굴을 통하여 호안석축(護岸石築)과 목주시설(木柱施設) 등을 갖춘 대규모 저수지 및 성벽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저수지 하부와 동성벽 주변에 식물유기체를 인위적으로 매립한 부엽공법 등이 확인된 것이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엽공법이 확인된 동성벽 주변 유기물 매립층에서는 나무방망이, 빗 등 많은 소형 목제품과 함께 묵서목간(墨書木簡)이 현재까지 260여 점이 출토되어 국내에서 목간이 가장 많이 출토된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 목간에는 신라의 관등명[官等名 : ‘一伐’, ‘一尺’ 등 外位]을 비롯하여 많은 지명(地名)이 기록되어 있어 한국고대사(신라사)의 지방행정조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에도 두루마리 문서에 꽂아 쓰는 제첨축(題籤軸)과 붓, 삭도(削刀) 등 중요유물이 다량의 동식물유체와 더불어 수습되었다.

고령 지산동고분군 (高靈 池山洞古墳群)

고령 지산동고분군 목록
유적명 고령 지산동고분군(518호분) 시대 삼국시대
지정 사적 제79호 조사기간 2012년 ~ 2013년

지산동고분군(사적 제79호)는 경북 고령군 고령읍 지산리 일원에 분포하고 있는 대가야의 최고지배집단 묘역이다.발굴조사 결과,삼국시대 수혈식석곽분1기가 조사되었으며 주곽을 비롯하여 순장곽 등 총11기의 석곽이 확인되었다.내부에서는 금동관편,금동제 수하부이식,금동제 마구류 등 중요 유물이 출토되었다.

창녕 영산고분군(昌寧 靈山古墳群)

창녕 영산고분군 목록
유적명 창녕 영산고분군 시대 삼국시대
지정 경상남도 기념물 제168호 조사기간 2010년 ~ 2012년

창녕영산고분군(경남 기념물제168호)은 창녕군 영산면 동리 및 죽사리 일원에 분포하고 있으며, 교동고분군, 송현동고분군 및 계성고분군 등 창녕지역을 대표하는 고분군이다.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수혈식석곽분 1기와 주변으로 봉분이 남아 있지 않는 수혈식석곽묘 10기, 횡구식석실묘 1기, 수혈유구 1기 및 고려시대 기와가마 1기, 조선시대 축대 1기와 추정 담장지 등이 확인되었다. 봉분 축조기술, 매장주체부 구조,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기존의 수혈식석곽에서 횡구식석실로 변모하는 5세기 중엽 무렵 창녕지역 고분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창녕 술정리 동서삼층석탑 (昌寧 述亭里 東西三層石塔)

창녕 술정리 동서삼층석탑 목록
유적명 창녕 술정리 동서삼층석탑 시대 통일신라시대
지정 동탑-국보 제34호, 서탑-보물 제520호 조사기간 2008년 ~ 2009년

창녕 술정리 동서삼층석탑은 창녕군에서 주변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석탑 기저부 구조 및 안전성 검토와 석탑 관련 유구 확인을 위해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동삼층석탑 조사에서는 탑 기저부를 돌과 흙을 교대로 섞어가면서 판축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 기초부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탑의 서편지역에서는 4기의 건물지가 확인되어 사찰의 가람배치 등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었다. 또한 “松林寺”명 기와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서삼층석탑의 기저부 조사에서는 바닥에 점질토를 다진 후 주변에서 채취한 사질토와 점질토를 교대로 다져 기저부를 조성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특히 탑 하층기단 아래에서 금동제풍탁(金銅製風鐸) 1점이 출토되었다.

창녕 송현동고분군 (昌寧 松峴洞古墳群)

창녕 송현동고분군 목록
유적명 창녕 송현동고분군(昌寧 松峴洞古墳群) 시대 삼국시대
지정 사적 제514호 조사기간 2004년 ~ 2008년

창녕 송현동고분군(松峴洞古墳群)은 교동고분군 및 계성고분군과 함께 창녕지역의 대표적 고분군으로 직경 20m 이상의 대형 고분과 중소형 고분들이 목마산성의 남쪽사면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표형분(瓢形墳)인 6·7호분과 15~17호분에 대한 발굴조사 및 고분군 주변의 목마산, 화왕산 일대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하여 34기의 고분을 추가로 확인하였다. 송현동 6 · 7호분은 대략 5세기 말 ~ 6세기 초에 만들어진 앞트기식돌방무덤으로, 석실을 중심으로 봉토를 방사상으로 구획성토한 축조수법이 확인되었고, 석실 내부에서는 각종 토기류와 다양한 금속 · 목제유물이 총 600여 점 출토되었다. 금귀걸이, 고리자루큰칼, 화살 무더기를 비롯하여 안교, 재갈, 등자, 교구, 금구(金具), 행엽, 운주 등의 각종 마구류가 출토되었다. 특히 7호분에는 녹나무로 제작된 목관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어 학계에 크게 주목받고 있다. 목관 주변에서는 칠기, 금동교구 등의 유물이 나뭇잎과 같은 유기물에 덮인 상태로 출토되었고, 석실의 양 단벽 쪽에는 굽다리뚜껑접시 등의 토기들이 광주리 안에 담긴 채 출토되어 당시 매장풍습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한편, 15호분에서는 금동관, 금반지, 금구슬 및 각종 마구류와 함께 순장인골이 출토되었는데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고고학, 법의학, 해부학, 유적학, 화학, 물리학, 조형학 등 인문학 및 자연과학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국내 최초 학제간 융합연구를 실시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고대 인체 복원 및 당시 매장풍습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성 내산리고분군 (固城內山里古墳群)

고성 내산리고분군 목록
유적명 고성 내산리고분군(固城 內山里古墳群) 시대 삼국시대
지정 사적 제120호 조사기간 1997년 ~ 2006년

고성 내산리고분군(內山里古墳群)은 적포만(赤浦灣) 해안 일대의 낮은 구릉(해발 10~20m)에 65기 이상의 중 · 대형 봉토분(封土墳)이 밀집 분포하는데, 삼국시대 소가야(小伽耶) 지배집단의 중심묘역 중 하나이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7차년에 걸친 학술발굴 결과, 고분 축조집단의 실체 및 당시 문화상과 더불어 고분군의 구조적 특징을 어느 정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즉, 봉분의 중앙에 수혈식석곽(竪穴式石槨) 또는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을 주곽(主槨)으로 설치하고, 그 주위에 다수의 소형 석곽과 옹관을 배치하는 다곽식(多槨式) 구조는 내산리고분군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대표적인 축조방식으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고성 송학동고분군, 율대리고분군, 연당리고분군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고성을 중심으로 한 소가야지역의 특징적인 매장풍습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제8호분을 비롯한 대다수의 고분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흑갈색점질토를 일정한 두께로 깔아 정지(整地)한 평면 원형의 토대(土臺) 위에 매장주체부를 설치하는 분구묘(墳丘墓)는 이 지역의 독특한 고분 축조방식으로 볼 수 있다. 출토유물 가운데는 굽다리접시[三角形透窓高杯], 수평구연호(水平口緣壺) 등과 같은 서부경남의 가야후기 토기양식 외에, 굽다리목긴항아리[瓔珞附臺附長頸壺]와 같은 신라계토기와 유공광구소호(有孔廣口小壺)와 같은 백제계토기도 다수 출토되고 있다. 이로써 6세기 전반대를 전후하여 내산리고분군을 축조한 정치체가 해안에 근접한 지리적 조건을 배경으로 당시 활발한 대외교류를 다각도로 실시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산청 지곡사지 (山淸 智谷寺址)

산청 지곡사지 목록
유적명 산청 지곡사지(山淸 智谷寺址) 시대 통일신라시대 ~ 조선시대
지정 경상남도 기념물 제225호 조사기간 2002년 1월 ~ 2002년 6월

산청 지곡사(智谷寺)는 신라 진흥왕(眞興王)때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전기에는 선종(禪宗)의 5대 산문(山門) 중 하나였으며, 진관(眞觀 ; 912~964)과 혜월(慧月 ; 10~11세기) 등에 의해 여러 차례 중흥을 이루며 19세기경까지 법등을 유지했던 유서 깊은 사찰로 지리산 웅석봉(熊石峰) 북사면 아래에 위치한다. 지곡사지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 그 실체를 밝혀주는「智谷寺」銘 내림새가 출토되었으며,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금당지(金堂址)에서는 불상대좌(佛像臺座)와 소조불상(塑造佛像)이 노출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수조와 비의 귀부가 사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또한 석탑 부재가 금당지의 중심축선상의 뒤편 구릉에 남아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시대 경주남산 등지에서 확인되는 망탑(望塔)을 둔 산지가람(山地伽藍)과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잘 짜여진 축대 위에 설치된 건물지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기와를 비롯하여 고려, 조선시대의 와전류 및 자기류가 상당량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의 출토양상과 가람배치로 볼 때 지곡사는 늦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창건되어 조선 후기까지 개보수를 거치며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