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 안내

실내전시실

전시실 입구
의림지 토층
중원문화를 찾는 첫걸음, 10년

충주를 중심으로 한 중원 지역은 예로부터 풍부한 철광산지와 내륙 및 한강을 이용한 교통로가 발달되어 이를 차지하고자 고대 삼국(백제‧고구려‧신라)이 경합하고 또 점유하면서 독특하고 복합적인 중원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전시실은 중원문화의 기반인 백제‧고구려‧신라의 문화상과 무덤을 통해 본 통일신라 및 제철문화를비롯해 5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한 강릉 굴산사지의 조사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중원문화

중원문화

중원문화
중원문화의 형성 배경 및 발전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제작된 3D애니메이션 영상물(3분30초)로 디지철 첨단장비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중원문화
중원문화
중원문화

마한 / 백제

마한 / 백제

마한
마한이 충주지역의 남한강변과 그 지류인 한포천변에 터전을 마련하고 크게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은 충주 금릉동유적과 노은면 문성리유적의 원삼국시대 대규모 움무덤군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백제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대에 재지세력인 마한을 복속시키고 중원지역을 점유한 뒤 제철산업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탄금대토성, 장미산성, 탑평리 백제 취락유적, 칠금동 제철유적 등을 통해 중원문화의 서막을 연 백제의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한 / 백제
마한 / 백제
마한 / 백제

고구려

고구려

고구려
고구려는 장수왕대에 평양 천도(427) 후 본격적인 남하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충주지역에 국원성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충주 고구려비는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기념비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외 고구려 목책치성이 확인된 장미산성, 탑평리유적의 고구려 온돌시설, 두정리고분군, 봉황리마애불상군 등에서 중원지역에 남긴 구구려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고구려
고구려

신라

신라

신라
신라는 6세기 중엽 진흥왕대에 한강유역을 차지하였으며, 지정학적 요충지였던 충주에는 국원소경(國原小京 557)을 설치하였습니다. 중앙탑이 위치한 남한강변의 탑평리 일대에서는 소경의 치소와 관련된 대규모 신라 취락이 확인되었고, 인근 누암리와 하구암리에는 700기가 넘는 신라의 지배층 무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중원 지배는 삼국통일 후 9주 5소경을 정비하면서 본격화되었는데, 개편된 중원(소)경은 일종의 부도(副都) 역할을 하며 지방통치의 거점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신라
신라
신라

제철

제철

제철
충주는 옛날부터 ‘철’이 유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이곳은 한반도 3대 철광산지이자 백제로부터 근세까지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내는 대규모 생산단지가 발달했던 도시였습니다. 백제가 융성했던 4세기! 탄금대 남사면을 중심으로 고대 제철단지가 형성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대소원면 노계마을 일대에 『고려사(高麗史)』와 같은 기록에도 나오는 ‘다인철소(多仁鐵所)’가 소재해서 최근 이와 관련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조사 되었습니다. 명실상부 ‘고․중세의 포스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릉 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는 1936년 대홍수로 인해 유적지 일대에서 초석과 계단 등 유구 일부가 확인되면서부터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본격적으로 학술조사를 추진하여, 5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지 30기, 공간을 구분 짓는 담장지 16기, 보도, 계단, 배수로 등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습니다. 굴산사는 유적을 통해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문(闍崛山門)의 중심 도량으로서 번성했던 당시 지방 선종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릉 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
강릉 굴산사지

메뉴담당자담당부서 :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담당자 : 김민지 연락처 : 043-850-7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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