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

발굴조사 상세
유적명 부여 왕흥사지(扶餘 王興寺址)
시대 백제 조사기간 2000년 ~ 현재
소재지(구주소) 부여군 규암면 신리 14번지 일대 지정사항
저작권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이용범위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부여 왕흥사지(사적)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등 옛 문헌에 법왕 2년(600)에 창건되고, 무왕 35년(634)에 낙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사비시대 사찰유적 중 그 유래와 명칭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현재 왕흥사지가 자리한 곳은 행정구역상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697번지 일대로, 드무재산 남편으로 이어진 동서 능선 사이의 계곡부에 해당한다.
1934년 규암면 신리 일원에서 「王興」명 고려시대 기와편이 수습됨으로써 처음으로 왕흥사지에 대한 대략적인 위치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왕흥사지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 성격 파악을 위해 2000년부터 현재까지 연차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사역 중심부에 해당하는 목탑지, 동․서회랑지 및 부속건물지, 사역의 남편경계에 해당하는 동서석축, 진입로로 추정되는 남북석축 등이 확인되어 왕흥사지의 대략적인 규모와 가람배치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축적되었다. 한편, 사역 동편 외곽에서 10기의 백제시대 기와 가마와 1기의 고려시대 기와 가마가 조사되어 왕흥사지에 공급하던 기와 공급처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고려시대 건물터와 기와 가마터의 존재, 이곳에서 출토된 「王興」명 기와를 통해 백제시대 창건된 왕흥사지가 고려시대까지 운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7년 진행된 제8차 조사는 목탑지와 목탑 남편의 동서석축, 남북석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목탑의 정확한 규모와 축조방식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문헌 기록에서 보이는 왕의 행차와 관련한 남북진입로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목탑지 심초부 조사과정에서 왕흥사지의 정확한 창건연대와 유래를 기록한 사리기가 출토되어 왕흥사지 건립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더불어 백제사 연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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