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

고고연구 발굴조사 대표

중요 선사·역사시대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사적지 정비와 복원을 위한 보고서 및 연구성과를 제시하여 역사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개발이나 도굴 등으로 훼손, 멸실될 우려가 있는 유적과 민원 발생의 소지가 있는 긴급한 사안의 유적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외소재 우리역사 관련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우리 민족 문화의 정체성 형성과정 및 교류양상을 밝히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강화도 돈대(사적 제 227호) 조선시대 국방유적 강화도 돈대 국내 최초 발굴조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산47번지 소재 '초루돈대'(樓墩墩臺)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초루돈대는 김포지역에 대한 군사보호구역 지표조사의 일환으로 현황조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강화도 일대에 잔존하는 돈대에 대한 축조 규모 등 보수 · 복원에 필요한 기초 자료가 부족하여 지난 11월 17일부터 12월 24일까지(36일간) 초루돈대를 발굴하였다. 이번 조사는 강화도 소재 돈대에 대한 최초의 발굴조사로서 그간에 이루어진 돈대에 대한 조사 · 연구가 지표상에 드러나 있는 현황 조사에 치우쳐 왔던 단점을 보완하고 돈대 축조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

초루돈대 전경 초루돈대 전경
포좌(북서)조사후 전경 포좌(북서)조사후 전경

초루돈대는 해발 45m의 낮은 언덕 위에 화강암을 다듬어 평면 계란형으로 쌓은 것으로서 남북 35m, 동서 27m 크기로 마치 돌로 쌓은 산성을 축소한 모양이다. 돈대에는 벽체를 따라 북쪽과 북서, 북동쪽에 포좌(砲座)가 있으며, 남쪽에는 출입문을 설치하였다. 돈대 바깥 벽면은 한 단의 기단석(基壇石) 위에 6∼8단 네모형의 화강암을 15㎝ 가량 들여 쌓고, 돈대 상면에는 할석(割石)을 3단으로 쌓고 흙과 강회를 섞어 마무리했다. 벽은 아랫단의 굴곡에 맞추어 돌을 다듬어 쌓는 정교함을 보인다. 조사 결과, 남벽과 북벽은 지표 아래 30∼40㎝ 아래에서 드러난 풍화암반층 위에 기단석을 설치하고 벽석을 쌓았으며, 원지반(풍화암반층) 경사가 급한 동벽과 서벽은 지형이 낮은 부분을 돌과 흙으로 보축한 후 벽석을 쌓았다. 바깥쪽 벽면을 지지하기 위한 내부시설은 바닥부터 머리 크기 할석을 벽석에 맞추어 위쪽으로 갈수록 좁혀 쌓고 벽면 5 · 6단 높이에서 2단으로 할석을 둘러 마무리하였다. 벽면과 보강석을 뒤채움하는 방식은 동 · 서벽이 차이를 보이는데, 동벽은 암반층 위에 적갈색 사질토, 숯이 많이 섞인 흑갈색 사질토, 뻘층, 점토층 등을 교대로 쌓아 뒤채웠고, 서벽은 보강석 위에 모래를 한 겹 깔고 그 위에는 점토와 굵은 모래흙을 교대로 다짐하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동벽 토층 상태 동벽 토층 상태
서벽 토층 상태 서벽 토층 상태

또한, 바깥쪽 상면은 할석을 쌓아 마감하였고 안쪽은 전돌을 2∼3단 쌓고 틈새에 회색 강회를 발라 마무리했다. 돈대 외부 원지반이 낮아 흙으로 보축한 위에는 주먹만 한 산돌을 넓게 깔아 빗물 등으로 인한 유실을 방지하고 있다. 벽석에 비해 기단석을 내어쌓은 점과, 내부 뒤채움 방법 등은 조선시대 석성의 축조방식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서 돈대의 축조가 전통적인 석축성곽 축조기술의 전통 위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또한 문 서편 벽면에서 축조 시기(康熙五十九年四月日:1720년)와 관직명 등이 새겨진 명문이 발견되었다. 초루돈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는 강화도 소재 돈대 연구에 기초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현재 강화군이 추진중에 있는 돈대에 대한 보수 · 복원에 필요한 실질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우리나라 성곽의 전개과정과 기술전통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외부기단 보강토 보호를 위한 잡석층 외부기단 보강토 보호를 위한 잡석층
봉분조사후(남쪽) 봉분조사후(남쪽)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담당자 : 남상원 연락처 : 042-860-9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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