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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본 제국에 의해 숨겨진 백제왕릉 송산리 고분군
담당부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작성자 김대영 학예연구사
작성일 2019-05-07
조회수 29
송산리 고분군은 우리에게 무령왕릉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백제 웅진도읍기 왕과 왕족의 무덤이다. 현재 송산리 고분군에 올라가보면 무령왕릉을 비롯하여 총 7기의 무덤이 정비되어 있으나 일제 강점기 조사된 자료를 조금만 찾아보아도 20여기 이상의 무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송산리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1927년부터 시작되어 대부분의 무덤이 일제 강점기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그러나 정식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되거나 보고서가 간행된 자료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1927년 송산리 고분군 조사는 일본인 輕部慈恩이 고분을 확인한 후 10월부터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약 9일간의 일정으로 진행하였다. 1927년 조사에서는 총 5기의 고분을 조사하고 이를 백제 왕릉으로 비정하였는데, 5기의 무덤을 조사하였음에도 1,2,5호분에 대한 것만 소화(昭和) 2년도 조선고적조사보고에 간략하게 수록하였을 뿐이다.

이후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 왕릉군으로 정비되는 과정에서 산발적으로 고분이 발견되어 1930년대에는 약 30기 정도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30기 정도의 무덤의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5호분~8호분 그리고 29호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당시 조사되었던 무덤이 현재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도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일제 강점기 송산리 고분군을 조사하면서 무령왕릉이 조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輕部慈恩은 6호 벽돌무덤 뒤쪽에 돌출된 인위적 지형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으나 사신(四神)사상을 바탕으로 현무(玄武)로 인식하고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 현무로 인식된 곳이 1971년 배수로 공사를 진행하면서 우연하게 발견된 무령왕릉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송산리 고분군은 우리 손으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조사를 진행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에 의한 무자비한 조사와 허술한 보고, 당시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고 부족했던 무령왕릉의 발굴조사, 80년대 그리고 최근 다시 조사를 진행 하였지만 성격에 논란이 있는 방단형 석축유구 등 송산리 고분군은 늘 무령왕릉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무덤을 조사한 적도 없었고, 이 고분군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송산리 고분군에 대한 연구는 일제 강점기의 조사 내용을 정리하거나 송산리 고분군을 조사했던 일본인 輕部慈恩에 대해 연구하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고분군에 대한 자료가 국내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점과 발굴조사 보고서의 미발간 등으로 인한 자료부족에 원인이 있으며, 이러한 연구 성과의 부족은 송산리 고분군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는데 가장 큰 문제점이 되고 있다.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가 다시 강국이 되었음을 알린 백제 중흥(中興)의 아이콘 무령왕의 무덤이 포함되어 있는 왕릉군이다. 또한 송산리 고분군은 대한민국의 사적 제13호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송산리 고분군의 백제시대 본래 모습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알고 있던 송산리 고분군의 모습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하루 빨리 체계적인 조사가 진행되어 백제시대 왕릉군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김대영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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