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

발굴조사 상세
유적명 (전)인용사지
시대 통일신라 조사기간 2002~2011
소재지(구주소) 경상북도경주시 인왕동 342 지정사항 사적(경주 인왕동 사지)
저작권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용범위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보고서명 전 인용사지 발굴조사보고서
경주남산 왕정곡 제1사지인 (전)인용사지는 『삼국유사』에 창건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고려한다면 인용사는 삼국시대인 7세기 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발굴조사 결과 중심연대는 8세기 후반이다. 다만 최근 조사결과 와적기단을 사용한 건물 등과 같이 보다 연대가 올라가는 건물지가 확인되므로, 창건 연대가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전)인용사지는 월성의 남쪽에 위치한 점으로 볼 때,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가진 사찰로 추정된다. 발굴조사 결과 금당과 남쪽에 배치된 동·서삼층석탑지와 회랑지, 연못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삼층석탑의 경우 팔부신중이 기단에 배치되었음이 확인되어 신라석탑 연구에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석탑 주변에서는 의례와 관련된 지진구가 다수 출토되어 당시 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 동·서탑지는 무너진 부재와 기초부가 확인된다. 기초부는 한 변 5.4m의 방형 수혈로 할석과 흙을 층층이 다져서 만들었다. 탑재 중 옥개석에는 금속장식을 부착했던 원공이 확인된다. 복원된 석탑의 규모는 약 5m 정도이다.

금당은 정면 5칸, 측면 5칸(동서 19.3m, 남북 15.7m)의 장방형 건물로 적심만 확인된다. 출토유물로 볼 때 7세기 후반~8세기 초반으로 추정되는 연화보상화문 수막새가 출토되었다.

동·서석탑의 남쪽에서 확인된 십자형 건물지는 매우 이질적인 모습으로 동·서익랑과 연결된 모습이다.

동회랑지는 일부만 잔존하는데 보칸이 1칸인 단랑식으로 남북 12칸(남북 42m, 동서 3.3m)이며, 서회랑지는 남북 21칸(남북 73.5m, 동서 3.3m)이다, 십자형 건물지와 연결된 동·서익랑은 적심만 확인된다. 익랑지는 모두 보칸이 2칸, 도리칸 3칸 구조인데 규모는 차이가 있다. 동익랑은 동서 9.9m, 남북 5.4m이며, 서익랑은 동서 10.5m, 남북 5.4m이다.

1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의 정보와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