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

발굴조사 상세
유적명 익산 왕궁리 유적
시대 백제~고려 조사기간 1989 ~ 현재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80-1 지정사항 사적 제408호
저작권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이용범위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익산 왕궁리유적(사적 제408호, 1998. 9. 17 지정)은 「왕궁평」·「왕검이」·「왕금성」이라고 불렸으며, 이곳에 고대의 왕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어 학계는 물론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곳이다. 역사적으로 백제 말기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이곳이 정치ㆍ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임이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문헌을 통해 널리 알려져 왔으므로 이 일대가 마한(馬韓)의 기준(箕準) 천도설(遷都說), 백제 무왕(武王)의 금마천도설(金馬遷都說) 혹은 별도설(別都說), 통일신라시대 안승의 보덕국(報德國) 도읍설(都邑說), 후백제 견훤(甄萱)의 도읍설 등 고대의 왕궁과 관련된 여러 학설이 꾸준히 제기되어 오고 있다. 이후 1965년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 1997. 1. 1 지정)의 해체ㆍ복원 당시 탑 내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금제금강경판(金製金剛經板)과 유리제사리병(琉璃製舍利甁)ㆍ 금제합(金製盒)ㆍ각종 장엄구(莊嚴具) 등이 발견되어 국보 제123호로 지정되었고, 탑 주변에서는 「상부을와(上部乙瓦)」ㆍ「관궁사(官宮寺)」 등의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다. 따라서 이 사지가 왕궁과 관계되는 궁내 사원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유적의 성격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주게 되었다.

이 유적에 대하여서는 백제문화권 유적정비사업의 일환으로 1989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한 연차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왔으며, 현재까지 지속적인 조사의 추진으로 전체 면적 120,000㎡ 중 ⅔에 해당되는 지역에 대한 전반적인 발굴조사가 완료되었다. 조사결과, 궁장의 규모가 동벽 492.80m, 서벽 490.30m, 남벽 234.06m, 북벽 241.39m의 대규모 궁성 및 사찰 관련시설로 중간 결론지워졌다. 성벽과 관련된 문지, 수구, 암거, 포석시설 등 지하 유구가 발견되었고, 명문와ㆍ연화문 와당ㆍ도가니 등 총 5,000여점의 중요유물이 출토되었다.

향후 추진 계획은 왕궁리유적 내 미조사지점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밀한 조사 및 연구를 진행하고, 유구 및 유물에 대한 면밀한 조사 및 분석을 통하여 후원 공간의 구조 및 활용 방식 구명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왕궁리유적의 성격을 구명(궁성-사찰로의 이행시기 및 양상 등)하고자 한다. 아울러 왕궁 외부에 대한 시·발굴조사 및 지질탐사를 통한 왕경의 존재 여부를 구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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